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로타어 마테우스 (문단 편집) == 플레이 스타일 == ||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a0pv45pulgM)]}}} || 마테우스의 장기를 이야기하며 수비력이나 멀티 포지셔닝을 말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부분도 대단하긴 했지만 막상 마테우스의 경기를 구해볼 경우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엄청난 스피드를 앞세워 미들 라인부터 시작하는 저돌적인 드리블과 어디서든 포워드 라인으로 빵빵 때려주는 킥 테크닉이다. 경기 내 볼 전진 능력은 당대 다른 포워드나 사이드 선수들과 비교해봐도 이례적일 정도. 온 더 볼도 상당하고 팀 템포를 이끄는 능력까지 타고났기에 하프라인에서 자연스러운 빌드업 리딩을 이끌기도 했다. 이걸 밑에서 받치는 건 역시 탁월한 운동량이고, 이 운동량을 바탕으로 한 수비 능력도 역시 마테우스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장점이었다. 이 모든 게 맞물린 마테우스의 가장 큰 장점이라면 이처럼 두루두루 미드필더에게 갖추어야 할 능력들을 상당한 레벨로 갖추고 있었기에 굉장히 자유로운 플레이가 가능했다는 것이다. 볼의 흐름을 읽어내는 포지셔닝을 갖춘 미들 플레이어는 일정 이상의 패스 능력과 온 더 볼 능력이 된다면 팀의 호흡을 조절하는 빌드업 리더가 될 수 있다. 이 킥 테크닉이 상대 문전을 위협할 수 있을 만한 수준이라면 후방의 찬스메이커가 될 수 있고. 다시 해당 선수가 상대 수비 라인을 직접적으로 부수고 들어갈 수 있는 신체 능력과 드리블링까지 갖추었다면 말 그대로 전후방을 포괄하는 만능 플레이메이커가 되는 것이다. 어느 위치에서 볼을 잡건 상대를 다양한 방식으로 괴롭힐 수 있는 전술적 유틸리티가 되고, 어느 위치에서 볼을 잡건 우군의 공격을 이끌어나갈 키 플레이어가 된다. 그리고 바로 마테우스가 그런 선수였고. 그야말로 전천후 박스 투 박스. 최후방에서 수비하나 싶더니 어느새 [[세컨드 스트라이커]]처럼 오르내렸다는 건 결코 과장이 아니다. 마테우스의 여러 가지 장점 가운데 수치로 가장 쉽게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은 뛰어난 득점력이다. 전성기 시절 그는 기본적으로 수비적인 롤을 맡았음에도 불구하고 어지간한 스트라이커 못지않게 많은 득점을 올렸다. 그는 세리에 A에서 다른 공격수들과 함께 득점왕 순위에 올라 있었고 팀 내 스트라이커인 [[위르겐 클린스만]]보다 더 많은 골을 기록하기도 했다. 대표팀에서도 주장으로 활약했던 1990 월드컵에서 스트라이커인 클린스만이나 [[루디 푈러]]보다 많은 4골을 기록하며 대회 득점 3위에 올랐다. 이렇게 많은 골을 기록하면서도 그는 중앙 미드필더로서 수비에서도 빈틈없는 모습을 보였다. 그만큼 넓은 시야와 빠른 판단력, 그리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뛰어난 체력과 민첩한 기술로 경기를 운영해갔던 것. 물론 1990년대에 들어서는 스위퍼로 전향하면서 최후방 수비를 맡게 되면서 득점력이 크게 줄었다. [[1990 FIFA 월드컵 이탈리아|1990 이탈리아 월드컵]]은 이러한 그의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의 모든 것을 보여준 화룡점정의 대회라고 할 수 있다. 물론 1990 월드컵이 골 가뭄으로 인해, 다이나믹한 공격 축구 기조라기보다는 미드필드에서 압박을 모토로 하는 '압박 축구'라는 트렌드가 유수의 언론에서 대두될 정도로 다소 지루하기도 한 대회였지만, 서독의 경기력만은 예외였다. 상대를 틀어쥐면서도 공격에도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 당 대회에서 가장 많은 골을 뽑아냈을뿐 아니라, 4강전 잉글랜드와의 경기에서 치고받는 난타전을 펼친 걸 제외하면 거의 모든 경기에서 상대를 압도하여 우승팀이라는 결과에 걸맞는 경기력을 뽐낸 대회였다. 따라서 마테우스 커리어의 정점인 1990 월드컵이 이른바 '망한 대회'이며, 그를 검색할 때 제일 처음 보게 되는 대회가 이 대회라서 안타깝다는 말은 그야말로 어불성설이 된다. 왜냐하면 서독의 1990 월드컵은 대회 자체의 기조와는 별개로 경기력과 결과가 뒷받침되는 보는 재미가 충분한 팀이었으며 경기력, 골로도 답답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또한 이에 마테우스의 플레이가 기여한 바가 매우 크므로, 오히려 마테우스가 돋보이면 돋보였지 안타까울 일은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는 이 대회에서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로 최고의 활약을 하여 피파 올해의 선수 초대 수상자가 되었고 발롱도르를 수상했다. 일부 사람들이 "포백 앞에서 빌드업에 적극적으로 관여하며, 그 이외의 다른 선수가 포백앞에 위치 하지 않으므로" 딥라잉 플레이메이커라 지칭을 주장하나,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라는 것은 반드시 포백앞 다른 홀딩 미들을 한 명 박아놓은 상태에서 유유히 전방으로 마실나가는 선수를 지칭하는 단어가 아니다. 본인 이외에 포백 바로 앞 다른 미드필더가 없더라도, 그리고 포백 앞의 그 혼자인 선수가 빌드업에 적극적으로 관여하더라도, 후방에서 볼 리딩 및 빌드업도 하고 전투적으로 태클 및 볼 탈취도 하며 필요시 전방으로 튀어나가 저돌적 드리블로 상대를 타격하는 모습을 한 대회에서 다 보여줬다면 그것이 바로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의 교과서와도 같은 모습이다. 기억해야 한다. '''1990 월드컵 우승 당시 서독 대표팀의 최다 득점자는 [[위르겐 클린스만]]이나 [[루디 푈러]]가 아닌 4골의 마테우스였다.''' 유고슬라비아전 원더골, 잉글랜드전에서의 터치라인부터 40미터 이상 드리블한 장면은 이를 입증하는 상징과도 같다. 단순히 경기를 시작할 때 포백 앞에서는 미드플더가 그 하나라는 이유로 이러한 퍼포먼스를 보인 선수를 딥라잉이라 한정하는 것은 용어 속에, 포지션 속에 그를 가둬버리는 일과 다를 바가 없다. 그가 미드필더 후방에 있다가 공격 지원으로 튀어나가면 그 자리는 후방의 [[클라우스 아우겐탈러]]가 메꿨으며 유고슬라비아전에서는 이러한 성향이 더 강했다. 앞서 서술한 유고전의 원더골 이전 전반전에도 그는 아예 전방에서 위치해 있다가 볼을 받아 왼발로 대포알 슛을 박아 넣는 장면을 연출한다. 1990년의 마테우스를 홀딩미들로 볼 수는 없다. 물론 스리백 바로 위 중앙 미들 포지션에서 플레이 한 것은 맞으나 홀딩 미들로 뛰었다기엔 지나치게 전방으로 가서 공격 포인트도 많이 쌓았고, 대다수 팬이나 전문가는 당시 마테우스를 박스 투 박스라 칭하지, "전직이 아닌 홀딩 미들로 뛰어서 다소 활약이 아쉽다"라고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1990 월드컵에서 그는 후방 플메-볼 위닝-전방 드리블 침투를 한 대회 내내 모두 보여준 괴물 같은 장악력을 선보였으며, 1990 월드컵 전후 소속 팀에서도 이런 기조는 그대로였다. 박스 투 박스가 드리블로 수비수를 직접적으로 타격하는 공격 본능만 지칭하는 용어가 아니다. 말 그대로 이쪽 페널티 박스서 저쪽 페널티 박스로 후방 플메질도 했다 볼 탈취도 했다 드리블 돌파도 하다 골도 넣기도 하는 그야말로 신출귀몰 활동량을 바탕으로 이곳저곳 필드를 모두 누비는 선수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한 경기를 보다보면 메시 같은 선수마저도 포백 라인 바로 앞에서 피케와 원투패스하거나 그 위치에서 전방으로 롱패스를 때려 넣는 장면이 있다. 하지만 그 장면으로 메시를 후방 플레이메이커라고 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특정한 한두 장면이 아니라 어느 기조로 플레이를 유지하느냐이다. 1990 월드컵에서 마테우스는 홀딩 미들이라는 용어로 한정할 만큼 특정한 후방 위치에서 홀딩 임무에 주력하던 선수가 절대로 아니었으며 따라서 해당 대회의 마테우스를 본직 박스 투 박스가 아닌 홀딩 미들 내지는 후방 플메로 뛰어 아쉽다거나, 그의 커리어 하이인 1990년 대회가 망한 대회라 그를 이 대회로 판단하기가 아쉽다는 말은 그야말로 본말이 전도된 궤변이다. 1990 월드컵은 마테우스의 커리어 하이임에도 분명하지만, 대회 자체의 지루한 압박, 수비 축구의 트렌드와는 별개로 그가 주장으로 팀을 이끌던 서독만큼은 화끈한 경기력으로 결과와 인기 모두를 잡은 대회였으며, 볼 리딩-볼 탈취-저돌적 드리블 타격-골[* 대회 4골로 팀 최다이자 모든 팀을 통틀어 그보다 많은 스코어러는 스킬라치(6골)-스쿠라비(5골) 단 둘뿐이다.] 등 이 모든 것을 다 보여준 대회로, 커리어 전체로 놓고 보면 꽤나 다양한 포지션에서 활약한 그를 명실상부 역대 최고의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로 자리매김하게 한 지표 같은 대회이기도 하다. 이 대회와 아킬레스건 부상을 기점으로 그는 점점 후방으로 내려가 [[1994 미국 월드컵]]에선 리베로, 그 이후 바이에른에서는 대놓고 최후방 스위퍼로 활약하기도 하나[* 아킬레스건 부상은 선수 능력에 큰 악영향을 끼치는 부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테우스는 바이에른에서 스위퍼로서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 마테우스는 1990년에 커리어의 정점을 찍은 박스 투 박스의 교과서라 칭하는 것이 가장 일반적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